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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6-30 02:38
기뻐할 때와 슬퍼할 때
 글쓴이 : 윤영선
조회 : 675  
기뻐할 때와 슬퍼할 때

사랑하는 이들이 죄 짓는 것을 보는 것은 마치 산고의 고통과 같다. 임산부의 산고가 오래 가면 결국 제왕 절개로 출산을 시도한다. 사도 바울은 그의 영적 자녀들이 죄 지을 때마다 탄식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 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갈4:19-20).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의 죄를 보고 우셨다(눅19:41). 성령님께서도 우리의 더러운 말을 들으실 때 근심하신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4:29-30).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 우리가 슬픔의 불모로 잡혀 있어야 하는가? 이 경우 슬픔은 동정과 사랑의 표시일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마5:8) 그들의 마음이 청결하고 거룩해지기를 바란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의의와 평강에서 오는 충만한 기쁨을 맛보게 되기를 바란다. 로마서 14장 17절은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이런 슬픔은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죄를 짓고 우리의 기쁨을 도적질해갔다면 이것은 뭔가 잘못된 일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죄에 대해 통회하는 마음을 갖고 내 대신 죄 값을 치르라"고 협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마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우리 마음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다스리도록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신다. 이 점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11절에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을 보고 우신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0장 21절에서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기뻐하셨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해 우셨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때는 기뻐하셨다. 예루살렘의 죄가 예수님으로부터 기쁨을 빼앗아갈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기쁨을 주셨다.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6:22). 어느 누구도 우리를 죄의 불모로 잡고 협박하면서 우리의 기쁨을 도둑질해갈 수 없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지은 죄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도들을 협박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빼앗아갈 수 없다. 기쁨을 빼앗긴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쓸모없게 되었으니 죄를 지은 자에게 베풀 사랑도 쓸모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죄인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그들의 죄에 멸망에 대해 무관심하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그 죄인을 다루시는 하나님께 만족을 두어야 한다. 어떤 처지에서 만족하는 것과 그 처지 자체에 대해 만족하는 것은 다르다. 죄를 짓는 아들을 보며 우는 것과, 모든 것을 협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맡기는 것은 다르다(막7:37).

기쁨을 함께 나눌 수도 없고 기쁨을 빼앗아갈 수도 없는 죄인들을 위해 슬퍼할지라도 우리 마음을 그리스도의 기쁨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 하시는 선한 분이기 때문입니다(엡 1:11, 시 100:5).

조경철 15-06-30 16:06
 
* 비밀글 입니다.